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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수련교육부장 편지 - 여의도성모병원 정대영 수련교육부장
등록일 2018-09-03 조회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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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C 전공의 선생님들께.."  


가을입니다.

가을은 뜨겁고 발붙이지 못했던 여름의 시간이 나름의 무게를 얻어 대지로 내려오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꽃이 피기도 전부터 설레던 마음은 이제 눈이 오기도 전부터 겨울을 생각 합니다.
 

이번 가을은 그간 보낸 수많은 계절 중에서 가장 생각이 많고 길은 멀어 보이는 시간일 겁니다. 이럴 때 누군가 나의 마음을 잘 아는, 아니면 나의 마음을 잘 들어 주기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잖은 위로가 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도 말도 나의 몸에서 난 것이 꺼내어 보면 낯 선 때가 늘어납니다. 나의 말을 끄집어 내기 어려울 때는 다른 이의 말을 듣다 보면 나의 말을 찾는 수가 있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간, 수 없이 많은 책이며 철학이며 종교며 경험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언뜻 일관된 방향성이 있으며 분별 가능한 선호가 있는 듯 보입니다. 멀리서 달려올 땐 그리 어렵고 길었던 것이 다만 숨이 가빴던 것은 제하면 쉬운 일이었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 삶의 한 고개에 이르고 보니 가야할 길이 온 길 만치 간단하지는 않은 것이지요.
 

전공의. 사실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을 아닙니다. 3년 또는 4년. 어떤 전공을 하던 그간 해낸 것들을 보면 못할 일도 없어 보입니다. 의과대학과 지난 수련의 기간 동안 자신의 적성과 재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고려하여 이미 나의 전공을 정하였다면 좋은 일입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꿈 꾸었던 의사의 모습이 있다면 더욱 아름다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직 뚜렷이 가슴을 두드리는 전공이 없다고 하여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길은 내가 찾아 내기기도 하지만, 길이 나를 찾아 오기도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교적 부유한 경제적 생활일 수도 있고 안정된 직장일수도 있으며 높은 지식을 근거로 하는 배타적 전문성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서 의사의 삶을 일관하는 특징들은 이런 것들이지요. 그리고, 아픈 이를 보살피고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지켜낸다고 하는 현실적 행위들로 의사의 삶은 이미 반쯤은 어떤 선한 의미에 닿아 있습니다. 산발한 머리를 하고, 구겨진 셔츠를 입고, 꼬깃한 가운을 걸쳐도 그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것은 그런 때문일 겁니다. 나의 수고로움이 그저 나의 경제적 생활의 수단일 뿐 아니라 누군가의 감동이 되고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라면 역사 속 수많은 영웅과 성인의 위업에 다르지 않겠지요.
 

수련의를 마친 후 의사로서 살아갈 삶은 무척 긴 시간입니다. 시간은 많을 것들을 변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의 생각이나 판단, 그리고 감정도 긴 시간 동안 변해 갈 것입니다. 변하는 것들은 처음엔 두렵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더 편해지고, 더러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뜻하지 않았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뜨거운 사랑이 있다면 모든 힘을 다해야겠지요. 그리고, 누군가 나를 뜨겁게 사랑한다면, 그의 말에도 귀기울여 봐 주세요. 나보다 먼저 나의 운명을 알아본 것일지 모릅니다.
 

전공을 하나 택한다는 것이 가벼운 일은 아닙니다. 아마, 지나온 모든 관문에서의 결정 중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공을 정한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대략의 방향을 정하는 것뿐입니다. 걷게 될 길은 지금 바라보이는 방향에서 가늠할 수 없는 굽이도 있을 것이고, 길의 폭은 넓어서 어디 쯤에선가는 다른 곳에서 시작한 길과 겹쳐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걸음걸이로 걷는가에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가을에 돌아보는 봄과 여름은 어떤 느낌인가요? 밝고 찬란한 기억이기도하고, 조금은 아쉽고 외로운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모든 순간이 한결 같지는 않았더라도 차곡차곡 쌓인 시간은 나름 묵직한 업(業)이 되어 다음 계절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을 겁니다. 새로운 임지에서 시작하는 가을과 겨울, 다가올 계절이 그저 전공을 선택하고 선택받기 위한 시험의 기간이 아니라 젊은 의사로서의 첫해, 좋은 결실을 거두고 새로운 씨 뿌릴 계절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여의도성모병원 수련교육부장

정   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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